[인터뷰] 버벌진트(Verbal Jint), '작은 프레임 안에서 앨범을 만든다는 건 내 지성이나 모험심을 모독하는 것'
힙플 : 드디어 고하드가 나왔다. 감회가 어떤가?
Verbal Jint (이하 VJ) : 2015~2016년 뿐 아니라 그 후로 올 몇 년 동안 유효할 것 같은 이야기들을 나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담아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속 시원하고, 동시에 텅 빈 느낌이다.
힙플 : 긴 시간이 걸린 앨범이다. 앨범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들이 있었나?
VJ : [Go Hard]라는 제목 자체가 [Go Easy]를 만들다가 생각난 것이었으므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쌓여온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다.
2011년 처음 의도한 바는 믹스테입 만들듯이 배설을 해보자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다 보니 swag 얘기 없고 디스곡 없이 건조하고 밀도 높은 reality rap 앨범을 만들고 싶어졌다. 한국음악 팬들이라면 다들 아실 것으로 생각되지만, 각종 피처링, 프로듀싱 작업과 TV출연 등으로 내 앨범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시기가 상당히 많았고 편곡도 많이 갈아엎었다. 그러다 보니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졌다.
힙플 : 앨범을 시작하게 만든 어떤 구체적 계기가 동기가 있었다면?
VJ : [Go Easy]나 [10년동안의오독 I]에서 '김진태'로서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야기나 소소한 일상이야기를 다룬 곡들로 인해 가려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벌진트가 아닌 사회구성원 김진태의 이야기를 대놓고 하고 싶었다.
힙플 : [Go Easy]의 반작용으로 [Go Hard]가 탄생했따면 굉장히 치열한 과정이었을 것 같다. 앨범을 만들면서 특별히 힘들었던 점이나 슬럼프가 있었나?
VJ : 하루에도 수십 번 기분이 바뀐다. [Go Hard]를 작업하는 와중에도 역시 흥미로운 일상랩, 연애랩, 심지어 전혀 힙합이 아닌 음악적 아이디어들이 끊임없이 떠올랐고, 유희하는 기분으로 곡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는데 그것들을 뒤로 미뤄두고 '최대한 현실적인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는 것이 어려웠다.
음악스타일 자체만 놓고 보자면 일상적으로 Metro Boomin, London on da Track, Ty Dolla $ign, Future, Mike Will Made It, Young Thug, Chance The Rapper 등등을 즐기다가 다시 내 작업에 몰두하며 나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 침착한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힙플 : 고하드에 대한 예고가 나온 시점부터 몇 년에 걸쳐 기대치가 정말 많이 쌓인 앨범이다. 혹시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VJ :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청자들이 나에게서 기대하는 모습에 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이 따로 있고 나는 조연을 맡을 뿐인 피처링작업에서는 다르지만)
내가 나에 대해 갖는 기대치가 가장 중요했다. 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고밀도 가사를 쓰느라 에너지 소비가 많았고, 견고한 사운드 건축물을 원했기 때문에 큐베이스를 오래 붙잡고 앉아있느라 허리에 부담이 되었고, 담배가 많이 늘었다.
힙플 : 부제가 '상향평준화'에서 '양가치'로 바뀌었다. 제작 과정 중 전체적인 그림이 바뀌기도 했나?
VJ : 딱히 방향설정을 바꾼 것은 아니다. 단지 작업곡이 10곡을 넘어설 때쯤 '양가치'라는 제목에 걸맞는 그림이 그려져 가는 것을 느끼고 제목을 그렇게 바꾸게 되었다.
힙플 : 일단, 고하드를 기다린 팬의 한 명으로서 감사하게 즐기고 있다. 피드백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주변 반응은 어떤 것 같나?
VJ : 반응은 예상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널려있는 힙합과는 전혀 다른 소재들을 다루다 보니 프로레슬링 선수 보듯이 랩퍼들을 대하는 수많은 힙합소비자들과는 별로 이어지는 지점이 없는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모두가 세입자 혹은 건물주니까 자연히 앨범 내의 몇몇 주제들에 반가워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프로덕션 면에서의 피드백도 역시 예상대로다.
힙플 : [Go Hard]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사이코반이 큰 역할을 담당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지만, 결국 스스로 거의 대부분의 프로덕션을 총괄한 앨범이 나왔다.
VJ :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특별한 계기나 의견불일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힙플 : 아마, [누명]과 [Go Easy]로 대표되는 상극의 앨범이 이번 앨범 [Go Hard]의 감상에도 개입되고, 영향을 끼칠 것만 같다. 어쨌든 양극에 있는 팬들에겐 호불호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앨범인데
VJ : 어떤 타입의 청자를 미리 설정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춰 음악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나 자신과 내 주변에 영향을 받아서 음악을 만들게 되는데 2015년, 2016년의 이야기가 2008년, 2011년의 이야기들과 같을 순 없다.
힙플 : 역대 가장 드라마틱한 앨범 중 하나인 [누명]에선 랩 게임에 대한 환멸을 그대로 담아냈고, 실제로 [Go Hard] 이전까지 씬을 달관해왔다. [Go Hard]에서 일부지만 씬 내부의 이야기들을 되새김질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VJ : 이번 앨범에서 씬 내부의 이야기를 얼마나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현재 나의 환경을 만들어준 요소들에 대해 가사를 쓰다가 몇 번 언급을 하게 된 것 같다.
힙플 : 올 초부터 에넥도트, 양화, 고하드가 빅앨범 삼두마차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앞서 발표된 두 앨범들은 혹시 들어봤는지? 들어봤다면 버벌진트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나?
VJ : 두 앨범 모두 반가운 마음으로 즐겁게 들었고 부지런하게 창작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 그러나 내 앨범의 소재나 방향설정과는 무관했다.
힙플 : 본격적으로 앨범 이야기를 해보자. 일단, 앨범의 파트를 두 구간으로 나눈 의도가 궁금하다.
VJ : 큰 의도는 없었다. 개인적인 작업흐름상 일단 어느 단계에서 매듭을 짓고 한숨 돌린 후 나머지를 마무리하고 싶은 정도뿐이었다. 에너지문제라고 해도 되겠다.
가사쓰고 녹음하는 것 외에 비트의 전개나 사운드 성향 하나하나 신경을 쓰다 보니 앨범 막바지작업 즈음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앨범 후반부의 10곡이 훨씬 암울한 톤으로 정리된 것 같다.
힙플 : 앨범 안에 무수히 많은 상반된 가치들이 혼재해있고, 대치하고 있다. 양가치라는 부제의 핵심인 것 같기도 한데, 구성에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VJ : 1번부터 21번까지의 구성에 대해서 주변 분들이 여러 가지 재미있는 감상평을 주셨는데 실제 내가 트랙순서를 정함에 있어서는 음악적으로 조이고 푸는 느낌, 앞 곡에서 뱉은 단어를 다음 곡이 이어받는 설정, 앞 곡의 정서를 다음 곡에서 다시 부정하는 설정 등 자잘한 구성미를 추구했던 것 같다.
힙플 : 'Rewind'는 굉장히 쉽게 나온 곡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이 곡을 포함한 '언어장벽', '건물주Flow'같이 소위 날이 서 있고, 타이트한 곡들이야말로 팬들의 예상 범위 안에 있던 [Go Hard]의 전형이었을 것 같은데. 결과적으론 훨씬 더 폭넓게 섭렵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VJ : 감사하다. 예상범위 안의 [Go Hard]라는 것이 뭔지 알 것 같긴 한데, 딱히 그 예상범위 안의 [Go Hard]만을 요구하던 사람들은 사실 팬들로 생각 안 할 뿐더러, 그 작은 프레임 안에서 앨범을 만든다는 건 내 지성이나 모험심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힙플 : 10년 전부터 버벌진트가 음악 안에서 부지런히 솎아내던 '막귀', '지진아'들은 이제는 '힙합프레임에 갇혀있는 근시안들'로 진화한 것 같다. 물론 버벌진트가 그때만큼 에너지를 할애하진 않지만, 어쨌든 옛날과 비교해 지금의 대립구도를 대하는 마인드셋이 궁금하다.
VJ : 대립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힙플 : 버벌진트와 헤이터는 사실 공생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난 날 오버클래스가 보여준 어떤 투쟁의커리어는 임팩트가 대단했다. 어쩌면, 당신이 말한 '힙합헤드'들이 원하는 진정한 엔터테인 소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정작 본인 생각은 어떤가?
VJ : 내가 갖고 있는 호기심과 욕심을 희생해가면서 타인을 만족시켜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대충 둘러봐도 그 역할을 기꺼이 맡고 싶어하는 랩퍼들은 많다.
힙플 : '시발점'의 코멘터리를 보면, 재즈힙합이란 카테고리에 어떤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코멘트는 서브장르에 대한 어떤 비꼼이었나?
VJ : 요즘은 어디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었는지 모르겠는데 Nujabes 사망시기 근처만 해도 재즈힙합으로 퉁쳐서 고급스러운 취급을 받는 대충 만든 음악들이 많다고 느꼈었다. '시발점' 비트를 처음 만들 땐 그런 음악들의 몇몇 단골 요소들만 재료로 빌려와 보겠다는 의도가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그게 잘 유지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힙플 : 이 곡에 빈지노를 섭외한 이유도 있을 것 같다.
VJ : 가사나 곡의 리듬상으로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처링 요청을 한 것이다.
힙플 : 반대로 '랩 발라드'에 대한 카테고리를 마음 속으로 설정하고 내리깎는 사람들이 있다면?
VJ : 어디부터 어디까지 '랩 발라드'인지 모르겠지만 특정한 정서가 싫은 것이든, 그냥 가요적인 게 싫은 것이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인지라 남이 뭐라 해봤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멜로디를 만드는 사람이고 프로듀서기도 한 나에게 한 곡 한 곡 나올 때마다 "랩! 랩! 마초랩! 아 형 이런거 말고 빨리 swag 있는 거 좀!" 이러고 앉아있는 사람을 보면 혹시 일상생활에서도 저렇게 멍청하진 않을까 의심하긴 한다.
힙플 : 다양한 플로우에 대한 시도들이 치열하게 느껴지는 앨범이다. 많은 영향들이 있었겠지만, '보통사람', '나대나' 같은 곡은 특히나 연출적으로 켄드릭라마가 떠오른다.
VJ : 2011년부터 [To Pimp A Butterfly] 앨범 발매 즈음까지 발표된 각종 켄드릭라마(Kendrick Lamar) 의 벌스들에서 많은 재미를 느끼고 자극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남의 곡에 짧게 피처링한 벌스들에서도 항상 자기만의 랩 구조로 독특한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모습, 곡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요리하는 방식,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많은 용기를 얻었다.
힙플 : 요즘 한창 논란 중인, 플로우 레퍼런스에 대해선 관대한 편인가?
VJ : 재미있는 경우도 있고 재미없는 경우도 있다. 관대한 편이냐는 질문은 '용서하는가 용서 못하는가' 이런 뉘앙스로 들리는데 나 역시 한 명의 음악팬으로서 어떤 판단을 내릴 순 있겠지만 버벌진트로서 할 말은 없다. 다들 똑똑하게 즐겁게 잘 해나갔으면 좋겠다.
힙플 : '아포가또'를 듣고, 유명세에 대해 생각해봤다. 버벌진트에게 유명세는 어떻게 다가오는지 궁금하다.
VJ : 예전보다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게 신기하고, 그게 더 넓은 활동의 폭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정말 감사하다. 그러나 동시에 완벽히 자유로운 산책을 하려면 좀 멀리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안타깝다.
힙플 : 사실, 곡에서 느껴지는 아포가또만큼 나름 밸런스 있는 희비라면 오히려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유명세로 파멸한 정말 많은 아티스트들이 있지 않나
VJ : 만일 완벽히 자유로운 산책을 아예 못 할 만큼 유명해진다면, 정말 파멸할 것 같다.
힙플 : 이센스의 경우 유명세의 쓴맛을 가혹하게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버벌진트 역시 'Fast Forward'에서 이센스를 샤라웃하며 대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 한국에선 특히나 민감한 문제다. 그 구절을 쓰는데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나?
‘I Wanna See E Sens Shine’ – Fast Forward
VJ : 큰 용기를 가지고 쓴 구절은 아니다.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랩음악의 상당수는 크든 작든 떨의 도움을 받은 상태에서 탄생했다고 믿고 있으며, 곡 자체가 널리 알려질 법한 스타일의 곡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구절로 크게 욕을 먹을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신기하게도 'Fast Forward'는 여러 방송국에서 심의를 통과했다.
힙플 : 조심스럽지만, 힙합 커뮤니티에서 이센스에 관한 반응들을 보다보면, 종종 놀랄 때가 있다. 준법정신과 힙합 팬심 사이에 발생하는 이중잣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VJ : 'Fast Forward' 가사에서도 밝혔듯 랩퍼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떨 관련해서는 이용자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 상황이 아니라면.
힙플 : 비프리와 산이의 비프는 측근으로서 어떤 감정으로 지켜봤나?
‘I Wanna See Free and San Squash Beef’ – Fast Forward
VJ : 자신과 다른 personality를 가진 누군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단지 지켜보는 눈들 때문에 당사자들이 자유로운 창작을 못 하고 작품의 방향을 재설정하거나 자기검열을 할까봐 조금 걱정되곤 했었으나, 이마저도 나의 오지랖이라고 생각한다.
힙플 : 위 구절과 같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의 달콤함을 만끽한 아티스트라면, 나름의 성찰이 있을 것 같다. 이 곡의 핵심키워드도 아니고, 꼭 거대시스템에 저항하는 투사일 필요도 없지만 위 구절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진짜와 가짜를 반대로 위치 짓고 있는 업계 내의 Cartel’ – 아포가또
VJ : '아포가또' 가사중 '업계내 cartel' 이야기는 창작자들에게 갖다 붙여도, 평론가들에게 갖다 붙여도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그 'cartel' 측에 속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아포가또' 가사를 쓸 당시엔 아까 언급한 "랩! 랩! 마초랩! 아 형 이런거 말고 빨리 swag 있는거 좀" 이러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챈 업계 내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음흉한 의도를 가지고서 뭔가 다른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는 뮤지션들을 뭉뚱그려 우스운 그룹으로 분류한 뒤 진짜힙합 VS 가짜힙합 구도를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힙플 : 이 곡의 키워드 중 하나인 만화 '내일의 죠'의 주인공 '야부키 죠'도 복잡다단한 캐릭터다. 이 캐릭터에 어떤 동질감을 느끼고 있나?
VJ : 동질감까진 아니고, 단지 '하나의 후회도 남기지 않고 하얗게 불태우고 싶다'는 가사를 쓰고 싶었다.
아, MBC에서 '내일의 죠'를 '도전자 허리케인'이란 제목으로 방영해주던 시기 오프닝곡(by 김종서)을 엄청 좋아하기도 했었다.
힙플 : 버벌진트가 빅뱅을 샤라웃하는 걸 종종 봤던 것 같다. 지드래곤의 팬이 되기까지의 변화과정이랄까?
‘…Dramatic하게 지금의 내가 G-Dragon 그의 팬이 될 줄 몰랐을 거야 누구도’ – 아포가토
VJ : 탁월한 것을 탁월하다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힙플 : 버벌진트는 어떤 순간에 '현자타임'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자신을 명확하게 돌아보는 순간들
VJ : 종합소득세 신고기간마다 현자타임을 느낀다. 나의 소비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힙플 : 버벌진트가 서울에 산다는 건?
VJ : 아까도 이야기한 내용이지만, 즐거운 산책을 위해 서울을 떠날까 생각 중이다. 서울의 높은 인구밀도가 지금은 좀 버겁게 느껴진다.
힙플 : 'My Bentley'는 어쩔 수 없이 더콰이엇의 'Bentley'와 함께 듣게 되더라. 'My Audi'에서 함께 두 차주의 상반된 정서가 흥미롭다.
VJ : 가사 그대로 'My Audi' 때는 '흐흐 즐거운 운전생활~' 이었고 'My Bentley' 때는 '으아아아 서울이 버겁고 지친다' 이런 느낌이다.
힙플 : '좌절좌절열매' 역시 'The Grind' 시리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두 곡 모두를 관통하는 '슈퍼을'의 좌절감이랄까.. 이런 문제에도 평소 관심을 많이 가지는 편인가
VJ : 가까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나름대로 각색해서 담았을 뿐이다. 아마 대부분의 랩퍼들이 잘 안 풀리는 인생, 꼬인 인생이란 소재로 가사를 쓰는 것에 큰 매력을 느낄 것이다. 함부로 다루고 싶진 않아서 많이 자제하는 편이다.
힙플 : '좌절좌절열매'의 연예인지망생을 '쇼미더머니'의 한방을 노리는 랩스타 지망생으로 설정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 것 같나?
VJ : '좌절좌절열매'의 경우 남성화자 1인칭으로 여성에게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쇼미더머니'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을 것 같다.
힙플 : 쇼미더머니 이야기를 해보자. 초심얘기에 민감한 버벌진트가 '세입자flow'라는 곡을 만들 정도니 상당히 인상적인 순간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대한 소회가 듣고 싶다.
VJ : 쇼미더머니4 참여의 목적은 정말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에너지를 얻고싶다', '에너지를 주고싶다'였는데 첫번째는 충분히 달성했고, 두 번째에 관해서는 반성 중이다. 'I'm Da Man' 가사에서 이야기했듯 새로운 랩퍼들에게서 많은 에너지를 받았다.
힙플 : 번복이라는 오명을 남겼을 땐, 다른 팀들의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기도 했다. 그때의 심경은 어땠나?
VJ : 비난은 당연히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실제 벌어진 상황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까지도 상상했었다. 관련자들과 쇼미더머니 시스템에 신뢰를 가졌다가 실망하신 시청자들에게는 아직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힙플 : 스눕독 에피소드는 충격적이었다. 심사위원으로서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나?
VJ : 내게도 충격적이었고, 그 자리에서 어떤 발언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
힙플 : 최근, 제이통의 앨범에서 디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힙합의 마초적 성향을 도려낸 장본인'이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VJ : 저 말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과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략 한국의 마초라 하면,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고, 쩝쩝거리며 식사하고, 소변 본 후 손 씻지 않고, 사람을 만나면 서열정리부터 해야 하고, 인종차별에 쩔어있고, 잘못한 것 사과할 줄 모르고 각종 공중예절 못 지키는 남자들이 떠오르는데, 힙합에서 마초적 성향을 도려낸 장본인이 나라고 인정해준다면 정말 고맙다. 사실 아직도 더 많이 도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마초 컨셉이 자기 밥줄인 랩퍼들도 있을 것이고, 그것 역시 나름 존중하지만 나는 그런 차고 넘치는 힙합마초 이미지에 더 이상 뭔가를 추가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힙플 : 사수자리4나 오독2 앨범을 기대해 봐도 좋을까? 또한, 고하드의 다음파트는 언제쯤으로 예상하고 있나.
VJ : 아직 그 어느 것도 이야기하기엔 이르다. 욕구가 생기는 게 우선이고, 그 후에 뭐가 됐든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힙플 : 마지막으로 브랜뉴뮤직 내 독립 레이블 ‘OTHERSIDE’를 설립은 큰 이슈다. 타블로의 하이그라운드를 비슷한 선상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예상들이 많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운영해 갈 계획인가?
VJ : 아직은 추상적인 그림밖에 없다. 당연히 힙합으로 한정되는 그림을 생각하고 있진 않으며, 성향이 맞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것들을 해보고 싶다.